본문 바로가기

삼국지

공손찬에 관하여...

반응형

공손찬입니다.
공손찬

백마장군 공손찬

 후한 말 18로 제후 중 한 명인 공손찬은 원소와 더불어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가장 강대했던 세력을 지닌 제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는 삼국을 띄어주기 위해 비중과 능력이 평가절하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북방의 패자였던 공손찬이 어찌하여 그렇게까지 몰락하였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민족과 공손찬

 공손찬은 처음에는 말단 문관으로 관직에 나아가게 된다. 맡은 바 업무를 굉장히 잘 처리하던 공손찬을 보고 마음에든 후 태수가 그를 사위로 삼으면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러다 공손찬은 요동 속국의 장사로 임명이 되며 북방의 이민족 퇴치를 전담하게 되었다. 공손찬은 기병을 기가 막히게 다루면서 이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이민족들은 공손찬의 위명에 두려움에 떨며 공손찬은 북방민족들에게 공포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유우와 공손찬

 이 당시 공손찬의 상관인 유우는 이민족들에게 유화책을 펼치며 공손찬의 강경책과 상반된 행보를 보여 공손찬과 척을 지게 되었다. 그러다 반동탁 연합이 만들어지며 원소가 유우를 황제로 옹립하려는 태도를 취하자 평소 유우를 껄끄럽게 여기던 공손찬은 원술과 함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이렇게 평생의 라이벌이던 원소와의 첫 인연이 시작되게 된다.

원소와 공손찬

 공손찬은 원술에게 파병을 보냈던 공손월이 전사하자, 모든 원흉이 원소라고 지목하며 둘 사이의 전쟁이 시작되게 된다. 공손찬은 원소 쪽으로 부대를 전진시키며 황건 전 30만 명을 마주치게 되는데 고작 2만의 병력으로 황건적 일당을 대파하게 된다. 탄력을 받은 공손찬 군은 소규모 전투에서 원소군에게 이기며 기주, 병주, 청주를 차지하게 된다. 더 이상 공손찬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원소는 국의를 선봉장으로 앞세워 출진하게 되는데 국의가 공손찬 군을 상대로 승리하며 공손찬이 물러나며 원소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게 되는데 공손찬이 부담스러웠던 원소도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민심을 잃은 공손찬

 원소에게 깨지고 돌아온 공손찬이 못마땅했던 유우는 그의 권위와 녹봉 등을 줄이며 공손찬을 압박하였다. 이에 화가 난 공손찬은 유우의 성 앞에다 새로운 성을 쌓으며 본격적으로 유우를 개무시하기 시작하였다. 화가 난 유우는 공손찬을 공격하지만 오히려 공손찬에게 역공을 맞고 포로로 붙잡혀 처형되었다. 유우가 처형되자 민심은 공손찬에게 등을 돌리게 되며 그의 밑에 있던 유비나 조운도 공손찬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비참한 최후

 원소가 두려웠던 공손찬은 역경 성을 쌓으며 성에 들어가 칩거 생활을 시작하는데 점점 성질이 포악해지며 주요 관직에 점쟁이나 상인들을 앉히며 누구도 이해 못 할 막장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최측근들도 은거에 들어간 공손찬을 쉽게 볼 수 없었으며 모든 상소는 줄에 매달아 누각을 통해 주고받게 되었다. 이에 공손찬을 더 이상 믿고 따를 수 없게 된 중신들이 도망치거나 원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점점 밀리던 공손찬은 결국 원소군이 역경 성 앞까지 도달하게 되자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그대로 분신자살을 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반응형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의에 관하여...  (0) 2022.10.23
장합에 관하여...  (0) 2022.10.11
여포에 관하여...  (0) 2022.10.06
마초에 관하여...  (0) 2022.10.05
순욱에 관하여...  (0) 2022.10.04